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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터진 손끝으로 빚어지는 안동포

안동삼베마을 2006. 5. 15. 06:02

 

갈라터진 손끝에서 빚어지는 안동포
<잊혀져가는 민속마을을 찾아서 5> 삼베마을
  이종찬(lsr) 기자   
지금 안동포 마을에는 대마채취가 한창

▲삼베 짜는 모습 ⓒ이종찬

지금 이곳에서는 녹색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는 그 녹색 물결을 헤집으며 끝없이 헤엄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다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냇가도 아닌 곳에서 끝없이 헤엄을 치고 있는 저 사람들은 누군가? 햇살은 무슨 까닭으로 저렇게 힘겹게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화살처럼 마구 쏟아져 내리고 있는가.

지금 이곳에서는 대마 채취가 한창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푸르른 하늘을 끝없이 달구는 태양처럼 가마솥이 발갛게 달구어지고 있다. 발갛게 달구어진 그 가마솥에서 무엇이 저리도 거품을 칙칙 흘리며 악악거리고 있을까. 이렇게 무더운 날에 저 사람들은 무엇을, 무엇 때문에, 왜, 저리도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열심히 가마솥 앞에 붙어 있을까.

대마? 대마초? 그렇다. 요즈음도 가끔 TV에 자주 오르내리는 연예인들의 대마초 흡연 사건의 바로 그 주인공 대마. 그 대마를 재배하고, 그 대마와 함께 살고, 그 대마로 손자까지 모두 대학에 보낸 사람들이 있다.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소재하고 있는 안동포마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안동포마을은 예로부터 삼베로 그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는, 요즈음 흔히 보기 드문 삼베마을이다. 이 마을은 신라시대에는 화랑도의 옷감을,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을 만든 안동포의 뿌리를 잇는, 우리나라 전통과 문화가 지금도 새록새록 숨쉬고 있는 곳이다.

안동시 문화관광과 담당자는 "이 마을이 1천년 이상 안동포의 맥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배수가 잘 되는 사질토인데다가 삼베의 재료인 대마가 자라기 쉬운 기후 조건 때문"이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삼베는 질이 좋은데다 삼베를 잘 짜는 사람들이 지금도 남아서 양질의 삼베를 직접 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동포 ⓒ이종찬
안동포 한 필 짜는데 15일에서 20일

안동포의 원 재료는 말 그대로 대마다. 대마는 보통 3월 말이나 4월 중순에 파종, 6월말이나 7월 초순이 되면 2미터 이상 자라는데, 이 때 수확하여 가마에 넣어 삶아야 한다. 삶은 대마는 잘 말려 껍질을 벗긴 뒤 가늘게 찢어 한올한올씩 뽑아내야 한다. 그리고 한올한올 뽑은 실을 삼베 올들에 풀을 먹인 뒤 베틀에 짜내면, 삼베로 탄생된다. 이렇게 글로 적으면 삼베 한 필 짜는 것이 간단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안동포 한 필을 짜는 데 걸리는 기간은 15일에서 20일 정도다.

삼베마을에서 안동포를 생산하는 가구는, 안동포 짜기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배분령(96세)할머니를 포함하여 대략 80여가구다. 하지만 한 가구에서 짜낼 수 있는 삼베의 양은 10필에서 15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잘 짜여진 삼베의 한 필의 가격은 100만원 정도이며, 그 중 질이 약간 떨어지는 삼베는 50만원 가량에 팔려 나간다. 특히 삼베는 윤달이 든 해에 많이 팔려 나간다고 한다. 그 이유는 윤달에 어른들의 수의를 만들어주면 무병장수하고 자손도 번창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안동포의 특징은 모든 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하는 데 있다. 그것도 100번 이상의 손질을 해야 발이 곱고 부드러운 안동포만의 삼베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안동포 마을에서 삼베를 짜는 사람들의 손은 마치 가뭄에 말라버린 논바닥과도 같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손바닥 갈라진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안동포의 특징은 천연염료인 치자 열매로 염색을 한다는 것이다.

삼베는 안동포뿐만 아니라 남해, 강릉, 보성 등지에서도 생산하고 있지만 이곳 안동포의 삼베가 가장 품질이 뛰어나다고 한다. 남해, 강릉, 보성 등지에서 삼베를 짜는 사람들이 들으면 섭섭할지는 모르지만. 또 삼베는 수분 흡수가 빠르고 증발력이 좋은 데다 공기유통 또한 잘 되어 항균 항독 작용을 하기 때문에 주로 수의복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대마 열매, 변비와 머리카락 나지 않는데 효과

흔히 삼 또는 마라고 불리는 대마는 쌍떡잎 식물 쐐기풀목 삼과의 한해살이 풀이다. 원산지는 중앙 아시아이며 분포지역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인도 등지다. 다 자란 대마는 온대 지방에서는 3미터 정도이지만 열대 지방에서는 6미터까지 이른다고 한다. 또 뿌리가 곧아 지하 30-40cm까지 뻗어 들어가지만 곁뿌리가 발달하지 않아 쉬이 잘 뽑힌다. 대마의 녹색 줄기는 횡단면이 둔한 사각형으로 잔털이 있고 속이 비어 있다.

7-8월에 연한 녹색꽃을 피우는 대마는 암수 딴그루로서 수꽃은 가지 끝의 잎 겨드랑이에 원추꽃차례를 달고 있으며, 암꽃은 매우 작고 꽃자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 1개의 암술이 있고 씨방은 1개의 꽃받침에 싸여 있다. 수꽃은 큰 꽃밥을 가진 5개의 수술과 5개의 꽃받침조각이 있어 꽃이 피면 꽃밥이 세로로 갈라져 많은 수의 화분을 날려보낼 수 있다.

대마의 열매는 약간 편평한 달걀 모양의 원형으로 잿빛이 도는 흰색의 단단한 껍질에 쌓여 있으며, 가을에 익는다. 이러한 대마의 열매를 한방에서는 화마인(火麻仁)이라 부르며 약재로 쓰는데, 변비와 머리카락이 나지 않을 때 특히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마 재배, 대마관리법으로 엄격히 규제

대마.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새록새록 숨쉬는 삼베의 재료이기도 한 대마. 하지만 자칫 잘못 사용하면 얼굴에 똥칠을 시키는 대마초의 재료이기도 한 대마.

그렇다. 누구나 흔히 알고 있듯이 대마에는 마취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대마의 잎과 꽃에는 테트라히드로카나비놀(THC)이라고 하는 마취 물질이 들어 있어 담배로 만들어 피우면 중독 증세를 일으킨다. 그렇다. 이렇게 대마의 잎으로 만들어지는 담배가 바로 그 악명 높은 대마초라는 것이다.

대마초는 사고력의 저하뿐만 아니라 비현실감, 망상, 흥분, 주의력 저하 등을 일으키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또 시각과 운동신경에 장애를 일으키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대마초를 피워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마관리법(1976.4.7. 법률 제2895호)으로 대마의 재배 및 취급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으며, 허가없이는 누구도 대마를 재배할 수 없다.

수의, 목숨을 지키는 옷이라는 뜻

그렇다. 삼베하면 누구나 수의를 떠올리기 쉽다. 그렇다면 삼베로 만든 수의가 지니고 있는 뜻을 살펴보자. 수의라는 단어는 목숨 수(壽)자에 옷 의(衣)의 합성어로 목숨을 지키는 옷이라는 뜻이다. 또 잠옷이란 말도 누에 잠(蠶)자를 써서, 누에의 옷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가 누에 고치 속에서 잠을 자고 난 뒤에 나비로 변신하기 위해 새로운 삶을 준비하듯이 잠옷을 입고 잠을 잔 뒤에 새로운 환생을 하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수의. 한때 명주가 삼베보다 비쌀 때, 비교적 집안 사정이 넉넉한 집에서는 명주로 수의를 지었고, 가난한 서민들은 값이 싼 삼베로 수의를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삼베가 명주보다 훨씬 비싸다. 그 이유는 삼베는 일일이 손으로 짜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인건비뿐만 아니라 아주 적은 양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또 시중에서 값이 싼 삼베는 대부분 중국산이 우리 나라 삼베로 둔갑한 것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또 명주와 삼베는 땅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썩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한 가지 재미 난 이야기가 있다. 20여년 전에 몇몇 장의사가 나일론 성분의 수의 옷을 명주로 만든 수의라고 속였다가 들통이 난 일이 있었다. 땅에 묻어버리면 누가 알랴, 라는 얄팍한 속임수를 명주와 삼베의 신이 알아차렸는지는 몰라도, 하필 그 나일론 성분이 함유된 수의를 입힌 가족이 묘를 이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몇년 전에 입혔던 수의가 하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때 삼베는 썩지만 명주는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우스꽝스러운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무형문화재 배분령 할머니 ⓒ이종찬
손자 며느리에게 가업 전수한 무형문화재 배분령 할머니

삼베마을에 가면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배분령(94. 임하면 금소리)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배분령 할머니는 80여년 동안 옛날 방식 그대로 안동포를 만들어온, 우리의 전통과 멋을 지켜온 분이다. 지금은 거동조차 하기 힘들어 쉬이 만나기 어렵지만, 주변 사람들 말로는 지금도 가끔 대마를 무릎에 비벼 껍질을 벗기고 입술로 실을 잇는 작업을 하시기도 한다고 한다.

14살 때부터 베틀에 앉아 손자들 모두를 대학에 보냈다는 배분령 할머니는 그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베틀에 앉아 반딧불처럼 숱한 밤을 밝히며 안동포를 짰다고 한다. 요즈음은 가끔씩 일본 관광객들이 더러 삼베마을에 찾아와 배분령 할머니가 짠 안동포를 구입하러 오기도 한다고 한다.

삼베마을의 삼베신으로 마땅히 추앙 받아야만 할 배분령 할머니. 배분령 할머니는 며느리 우봉인(69)씨와 손자 며느리에게까지 예로부터 내려오던 방식 그대로 삼베 짜는 법을 가르쳐 이 집안에서 3대째 기능보유자가 탄생할 전망이다. 요즘은 이 집안에서 주로 삼베를 짜는 사람은 며느리 우봉인씨다.

안동포를 직접 구입하여 판매하고 있다는 모씨는 "안동포가 타 지역에 비해 특히 뛰어난 것은 대마를 어릴 때 채취하므로 부드럽고 연하다" 라며 "타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안동포를 보고 한산모시인 줄 착각할 정도로 삼베의 질이 곱다"고 말했다.



안동포 구입 문의: 골든수의복(02-2060-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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